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무타즈 (문단 편집) == 5차 피트나 == * 자세한 포위는 [[알 무스타인]] 문서 참조 하지만 865년 초에 사마라가 혼란에 빠지고 무스타인이 바그다드로 도주하며 상황은 급변하였다. 튀르크 무신들은 무스타인에게 모욕을 당한 후 무타즈, 무아야드 형제를 석방, 전자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무타즈는 동생 탈하를 사령관으로 선임하여 바그다드를 포위하게 하였고 종종 서신을 보내어 전쟁을 지휘하였다. 무스타인이 무함마드 총독에게 전권을 일임한 것과는 대조되었다. 포위는 결국 식량난에 시달리던 바그다드 측이 조건부로 항복하며 종식되었다. 866년 1월, 알 무타즈는 정식으로 이슬람 제국의 칼리파가 되었다. 비록 5차 피트나가 사마라 정권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양측 모두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소모하였고 수만여명이 희생되었다. 백여년간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 번영을 누리던 '평화의 도시' 바그다드는 4차 피트나 때의 이상으로 크게 파괴되었고 특히 주요 전장이었던 티그리스 강 동안 지역은 이후로도 끝내 회복하지 못할 피해를 입었다. 제국의 중심부이자 가장 부유한 지역인 이라크 일대가 1년여간 전장이 되며 겪은 약탈과 인명 손실은 약화되어 가던 압바스 조에게 또다른 악재였다. 한편, 바그다드 정권은 방어를 위해 안바르 일대의 수로를 터뜨렸었는데 이후로도 완전히 복구되지 못하여 메소포타미아 중부 (사와드)의 관개 농업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했던 압바스 조의 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세수는 군대의 봉급을 지급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전부터 고질적인 문제였던 군대의 난동은 해결되지 못하였고 실권을 장악하려는 칼리파 간와 군대와의 갈등도 지속되었다. 대격동기를 지났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못한 제국의 문제점은 결국 압바스 조의 쇠퇴를 가속화 시키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